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프레도 피가로 (문단 편집) === [[NPB]],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시절 === 2004년 아마추어 자유계약으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입단해 다저스 산하 도미니카 서머리그 팀에 배속됐지만 1년만에 방출됐다. 이후 2005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산하의 도미니카 서머리그팀인 DSL 타이거즈에 입단했다. 그렇게 한동안 마이너리그에서 머물다가 2009년 6월에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데뷔해, 당시 [[돈트렐 윌리스]] 대신 잠시나마 선발 로테이션에 끼기도 했다. 2010년에는 [[중간계투]]로 8경기에 등판해 0승 2패 6.7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12월 14일 [[웨이버 공시]]됐고, 그로부터 3일 후인 [[12월 17일]]에 [[오릭스 버팔로즈]]가 피가로를 영입했다. 2011년에 3선발로 낙점받았지만 3경기 동안 한 번도 이기지 못하면서 2군으로 강등됐다. 이후 복귀전에서 시즌 첫 승을 따고는 5연승을 기록했다. 6월 15일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전에서는 [[카가 시게루]]를 상대로 솔로 홈런을 치기도 했다.[* 이날 피가로의 유일한 안타로, 나머지 타석은 삼진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이 경기 후로 타선의 지원을 못 받으며 승리 행진도 멈추었고, 8월 하순 다시 2군으로 강등됐다. 다시 복귀한 후에는 선발과 [[중간계투]]를 오갔다.[* 중간계투라지만 주로 3~5이닝 가까이 던지는 롱 릴리프였다.] 2011 시즌 성적은 24경기 20선발 8승 6패 평균자책점 3.42.[* 언뜻 보면 에이스급 같아보이지만 저 시즌 NPB 퍼시픽리그 전체 평균자책점은 2점대 극후반이었다. 타고투저의 끝판왕인 2014-2018 KBO 기준으로는 거의 5점대 중후반 느낌.][* 단순 계산이지만 피가로가 한국에서 보여줬던 평균자책점을 당시 일본프로야구 투고타저에 대입하면 1.95-2.05 수준이다.] 2012년에는 [[가네코 치히로]]의 부상 때문에 [[2004년]] [[구대성]] 이후 외국인 투수로 8년만에 개막전 [[선발 투수]]로 등판했다. 그러나 개막전에서 패전투수가 됐고, 이 때문인지 시즌 내내 승운이 안 따르며 총 11번 등판해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5패만 떠안았다. 참고로 11경기 모두 선발 등판. 시즌이 끝난 후 도미니카 윈터리그에서 활동하는 한편, 오릭스 구단이 자유계약으로 공시하지 않았음에도 12월 19일에 [[밀워키 브루어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으며 이중계약 파동이 벌어졌다. 윈터리그 참가 당시 피가로의 신분이 자유계약으로 표기됐던 탓에, 밀워키는 피가로의 보유권이 오릭스에게 있는지 모르고 계약해버린 것. 결국 2012년 12월에 밀워키는 피가로와의 계약을 해지했고, 2013년 1월 28일 오릭스도 문제를 일으킨 피가로와의 재계약을 포기했다. 오릭스가 계약을 포기하면서 밀워키가 다시 피가로에게 접촉했고, 2013년 3월에 밀워키와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었다. 33경기에 등판해 3승 3패 4.14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한편 [[임창용]]이 9월 7일 [[시카고 컵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를 때 밀워키 불펜에 있는 [[https://youtu.be/z7RKGv_ecas?t=263|모습]]이 중계카메라에 잠깐 잡히기도 했다.--불과 2년뒤에 한국땅에서 같은팀의 동료로 만날지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2014년에는 트리플A와 메이저리그를 오가면서 겨우 6경기밖에 등판하지 못했고, 결국 시즌 후 [[웨이버 공시]]돼 [[텍사스 레인저스]]가 클레임을 걸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